2021. 7. 2
분당에 자리를 잡은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3개월 전, 열심히 이력서를 내고 포항에서 수도권 지역까지 면접을 보러 다녔다.
로켓펀치, 원티드 채용 공고들을 살펴보며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찔러넣었다.
코딩테스트 준비와 자바스크립트, 리액트 공부를 하며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수많은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의 아픔을 맛보며 좌절하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도중 로켓펀치에 이력서를 공개해둔 덕분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연봉과 복지가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고, 또한 개발 회사는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과감한 투자들을 연이어 진행하고 있는, 마인드가 훌륭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같은 포지션의 선배 개발자가 없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나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서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에게 대구, 경북을 제외한 다른 곳들, 또한 수도권은 미지의 세계였다. 당연히 경기도 지역은 너무나도 생소한 곳이었다.
이미 회사에 면접을 다녀왔지만 내가 가는 곳이 성남인 줄만 알았지, 거기가 얘기로나 듣던 ‘분당’인지 몰랐다. 수도권 사람들이 보면 무식하다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대구 촌놈이 멀리도 나왔다고,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이직을 확정짓고 한 달간 이사할 집을 구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포항 집을 정리하고,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일을 도와주셨다.
특히 아버지께서 이삿날 너무 고생하셨다. 트럭으로 일요일 아침부터 포항에서 짐을 싣고, 구미에서 지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다시 대구로 가서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분당으로 이동해 짐을 내려야 하는 대장정이었다. 짐을 모두 내리고 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고, 다음날 아버지는 출근하시기 위해 바로 내려가시기 바빴다.
몇 주 뒤 할머니를 뵐 일이 있어서 이사할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 드리며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렸더니, 너가 나중에 아들 낳아도 똑같이 해 줄 거라고,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하신다.
또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이직하기 위해 React를 중심에 두고 공부했던 나는 회사의 기존 프로젝트 소스가 Vue로 구축된 덕분에(?)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Vue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Vue.js 알리미로 유명하신 캡틴판교 님의 대부분의 Vue.js 온라인 강의를 3개월 동안 열심히 들으며, 기존 소스에 조금씩 적용해가고 있다.
캡틴판교 님이 활동하시는 판교와도 정말 가까운 곳으로 왔다는 생각을 하니 개발자 행사같은 것들에 대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지긋지긋한 역병은 끝날 줄을 몰랐고,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는 훨씬 체감이 심하게 왔다. 확진자 수는 지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루마다 쏟아져나왔다.
4월 한 달을 다니고, 5월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평생 골프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분당 치고는 굉장히 저렴한(?) 연습장 이용료와 레슨비로 운영하는 연습장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자기개발, 몸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고 골프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